나라



  하얀 하늘의 장 (3)


  비는 그쳤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백색의 태양이 하늘 전체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의 결정이 하늘 전체에 퍼져 있는 것처럼 하늘은 새하얗다. 먹구름은 비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모두가 하늘을 우러러 보는 가운데 커다란 폭음이 들린다. 산 전체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회의장 지하로부터 검은 연기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른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회의장에서 멀리 물러났다. 군들은 당황하며 연기를 손으로 헤쳤다. 곧 다른 사람들도 연기를 없애보려 손을 휘둘러댔다. 각자 회의장 아래에 있을 누군가를 부르면서 말이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향해 올랐지만, 다행히 하얀 하늘에 결점을 만들지는 않았다.

  “회의장 어딘가에 연못이 있을 거다! 찾아!”

  인율과 인열 형제의 명령에 사람들은 정신없이 흩어진다. 곧 연못이 발견되었다. 일제히 물을 담을 수 있는 것들을 갖고 연못에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찢어져 버린 검은 천으로 입과 코를 가려 검은 연기를 막았다. 들고 있는 물을 거침없이 회의장 안으로 뿌렸다. 하지만 연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밖에서 물을 뿌려도 소용없잖아.”

  여기저기서 한숨 섞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선에서 물통을 움직이던 사람들은 지쳐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던 인열이 짧은 함성을 질렀다. 들고 있던 두 개의 물통으로 자신의 몸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다시 물통에 물을 담았다. 인율은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했다. 둘은 눈을 맞추고 회의장 지하로 뛰어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수군거렸다.

  “이대로 두면 저 둘까지 죽는다!”

  그들은 다시 분주히 움직였다. 조금씩이지만 한 걸음씩 지하실로 나아갔다. 매캐한 연기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은 바깥으로 뺐다. 그래도 숨을 돌리고 나면 지하실로 다시 뛰어들고야 말았다. 검은 연기도 많이 옅어졌다.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은 복도까지 도착했고 불이 붙어있는 부분들을 찾아 물을 부었다. 인열과 인율은 금방 발견되었다.

  “기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살아 있어. 어서 찾아라!”

  둘로 인해 진화는 활기를 띠었다.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진화의 길을 연다.
  비켜, 굵직한 목소리였다. 인열과 인율은 그대로 몸울 굳혔다. 맹수의 발톱이 귀를 훑고 지나간 느낌. 미약하지만 목소리와 그 메아리에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온통 몸을 둘러싼 그것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인열과 인율의 물세례를 통해 겨우 불길을 벗어난 차였다. 하지만 불씨 같은 것은 발로 짓밟으며 회의장 바깥까지 걸어 나왔다. 하얀 하늘 아래 잿빛 몸뚱이가 두 개 나타난다. 하나의 몸뚱이가 다른 몸뚱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굵직한 양 팔로 류거흘이 왕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바깥의 사람들은 시선을 고정시켰다. 왕은 크게 기침을 했다. 류거흘은 왕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율이 려린을 부축해 나왔고, 인열은 큰 덩치로 가율과 햔을 들쳐 업어 나온다. 류거흘은 가율과 눈을 마주친 뒤, 초점을 흐리면서 무릎을 휘청거린다. 재빨리 태도로 몸을 지탱하려 했다. 그러나 잔뜩 금이 간 태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부러지고 말았다. 류거흘은 땅바닥에 몸을 부딪친다. 가율은 마구 손을 허우적거려 인열의 몸에서 내려왔다.

  “누…구…?”

  가율은 왕을 보며 물었다.

  “폭발, 누…구…?”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서 고개를 젓기만 했다. 가율은 고개를 돌렸다. 류거흘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동안 회의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진다. 가율의 걸음 소리에 맞춰서 입구 쪽에서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율의 발걸음이 멈췄을 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화살은 정확히 가율의 어깨에 꽂혔다. 태도가 간신히 빗겨갔던 자리를 화살촉은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갔다. 가율은 입술을 세게 물고 비명을 참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무기를 집고 일어났다. 회의장 안,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한다. 그곳에는 검은 천으로 온 몸을 두른 자가 서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터지지 않은 화약이 있었나보군. 회의장을 통째로 날려버릴 셈이었는데 말이다.”

  려린이 어느새 활에 화살을 먹이며 외친다.

  “지늘윤!”

  지늘윤은 미소를 띠운다. 그의 등 뒤에는 많은 수의 군들이 무장한 채 서있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의 조소가 섞인 목소리가 회의장 안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살려준 것에 대한 보답은 언젠가 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인육애호가의 왕권에 대한 도전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네. 진실이 퍼져서도 안돼. 왕은 인육애호가가 터뜨린 화약과 함께 불꽃이 되어 사라져버린다. 인육애호가 전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왕과 함께 불타 버리는 것이지. 그게 진실이 되어야 한다.”
  “폭발. 너…?”

  가율의 목소리가 잠시 동안 메아리쳤다. 사람들의 귀와 귀를 오가는 사이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커졌다. 가율은 하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입으로는 계속해서 무언가 중얼거리지만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다. 지늘윤은 가율의 모습을 흘겨보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럼 나는 대권족의 이름하에 모두에게 알리면 된다. 인육애호가가 여태 얼마나 왕에게 분노했는지, 목적을 이루는 순간의 기쁨은 죽음마저 초월했다고 말이네. 실제로 이 많은 호위군들에게 포위당할 것이 뻔해도 이곳까지 돌파해 오지 않았나? 틀린 말은 아닐 테지. 하나의 집단, 이 나라에 얼마나 분노해왔는지 말일세. 그러니 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너…….”

  지늘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가율의 목소리가 회의장 공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적막의 범주를 지나 고요함을 꿰뚫고서 살의가 공기의 빈자리를 메운다. 한 번 더 살의의 육중한 무게를, 가율은 지늘윤에게 실감시킨다.

  “너구나.”

  가율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걸음을 밟는다. 빙 돌아서 류거흘과 지늘윤의 사이에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율의 발이 순간에 살의를 가르며 지늘윤에게 달려 나갔다. 긴 거리를 달려가는 동안에 지늘윤은 침착하게 활을 쏘았다. 어깨, 팔뚝, 허벅지. 정확히 세 발의 화살이 명중했지만 가율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소곤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들이라서 아버지와 닮은 구석도 갖고 있습니다. 한 번에, 완전히 변하는 방법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가율은 늘어뜨린 팔 한 쪽을 힘차게 들었다. 손에는 부러진 태도의 손잡이가 보였다. 태도는 손잡이로부터 겨우 한 치 정도의 날만 남아 있었다. 가율은 점점 더 달리는 속도를 더해갔다.
  지늘윤은 당황해서 이후에 화살은 활에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 지늘윤이 당황하는 모습도 잠시, 가율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덮쳤다. 그리고 손아귀에 잔뜩 힘을 싣는다. 손등에는 핏줄이 서고 지늘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지늘윤은 안간힘을 쓰며 입을 크게 벌려서 가율의 손을 물었다. 지늘윤의 이에 가율의 피가 서서히 적셔진다.

  “맛있나.”

  가율의 목소리는 웃었다. 지늘윤은 흠칫 한다. 활을 놓고 가율의 손가락을 부여잡아 틈을 만들었다. 회심의 미소와 함께 지늘윤이 크게 외쳤다.

  “전 군들은 이곳을 확보한다!”

  가율은 눈을 크게 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어 올린 태도를 단숨에 내려친다. 태도의 두터운 날이 심판의 망치처럼 지늘윤에게 떨어져 내렸다. 단숨에 지늘윤의 머리를 으깨려던 찰나 왕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침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발음이 부정확했다. 왕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침이 더욱 심해지는 것도 모른 채 멈추라 소리쳤다. 가율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지늘윤을 내려다보았다. 비록 태도는 멈추었지만 눈빛만큼은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왕은 살기어린 가율의 눈을 보며 핏빛 입술을 뗀다.

  “네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다.”

  가율이 잠깐 몸을 떨었다. 고개를 몇 번 휘젓더니 크게 대답한다.

  “저 많은 군들을 헤쳐 나갈 수가…….”

  말하는 도중에 가율은 다시 태도를 쳐들었고 이를 악 물었다. 입구의 군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태세를 갖추었다. 아직 폭발하지 않은 어딘가의 화약은 꼭 그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햔이 가율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는 느긋하게 태도를 받친 가율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주었다. 지늘윤은 맹수 곁의 토끼처럼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으며 단지 햔의 동작을 지켜볼 뿐이다.
  햔은 하얀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천천히 접기 시작했다. 모든 손가락이 접혀 주먹이 되었다. 주먹은 햇빛을 받아 약하게 반짝였다. 햔의 행동에 맞춰 입구에 서있던 군들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힘 있고 절도 있게 무기들은 땅을 향한다. 그것은 마치 하얀 하늘을 향해 엎드려 절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햔은 간단히 설명했다. 입구의 군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인열에게 맡겨둔 군들이었다. 햔이 가율을 향해 웃으며 묻는다.

  “이제 길을 열어 가는데 그것은 필요 없네. 자네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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