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자린산을 휘감았다. 채 반도 뜨지 않은 해와 미처 자리를 비우지 못한 밤이 물과 기름이 섞인 듯, 아주 잠시 동안 섞여 있는 시간이었다. 어딘가에서 몰려온 먹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밤은 무거워진 몸을 세상에 눕혔다. 발이 지면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류거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의장 지하에서 분출되는 소리였다.
  햔은 호위군 무리를 일부 축출했다. 그는 인열에게 남은 호위군의 지휘를 맡긴 뒤, 이십여 명의 호위군을 이끌어 회의장의 입구 앞에 섰다. 한 발짝만 넘으면 회의장 안의 자욱한 먼지에 몸을 맡기게 될 것이다. 입구 밖으로 흘러나온 먼지가 그의 어깨 위에 쌓이기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어깨에 자리를 잡을 때마다 그는 여태 만나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려린과 류거흘, 상반된 생각의 권족들, 호위군과 인육애호가들, 왕과 나라의 백성들까지. 그는 고개를 반만 돌리고 호위군들에게 말했다.

  “멀찌감치 물러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는 다시 앞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발걸음을 떼어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회의장 지하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울려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따금 지하까지 흘러들어온 먼지가 바닥에 눈처럼 쌓이기도 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혀 불똥이 튀고 복도는 한순간 밝아진다. 섬뜩한 빛이 지나간 자리에 잔상이 남았다. 류거흘은 특별히 상처가 난 곳은 없었지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한 호흡 거르고 그는 외쳤다.

  “세뇌라도 당했느냐, 지위라도 받았느냐. 가율!”

  류거흘의 어깨너머로 가율이 단검을 쥐고 있다. 가율은 숨을 헐떡였다.
  복도를 밝히는 등의 몇 개는 꺼져버려 그들의 얼굴은 그림자로 가득했다. 불꽃이 남아있는 초는 반이나 타버린 상태였다. 불꽃들은 언제 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한다.

  “네 어미를 잊었느냐.”

  류거흘은 낮은 목소리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복도를 가득 메우던 호흡 소리가 멎었다. 벽이 고요의 늪으로 변해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고요함은 묵직했다. 류거흘이 느릿느릿 늪을 헤치며 한 쪽 발을 내밀었다. 태도를 뒤로 당기고 시선은 햔과 맞춘다. 햔은 발을 뒤로 빼었다. 단검은 비스듬히 든 채로 태도의 각도와 정 반대로 맞추었다. 일렁이는 불꽃에 태도와 단검은 붉게 물들어 있다. 먼저 움직인 쪽은 류거흘이다. 태도의 끝이 벽을 긁으며 파열음을 내었다. 작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이끌고 태도가 햔의 앞을 위협적으로 지나쳤다. 가율의 머리카락이 몇 올 잘려나갔다. 가율은 그대로 몸을 숙이며 단검으로 태도를 밀어 벽에 박아버린다. 태도는 벽에 깊숙이 박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가율은 단검을 놓고 온몸으로 류거흘의 배에 부딪혔다. 투박한 소리와 함께 가율과 류거흘은 바닥을 뒹굴었다.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잊는 일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가율은 말을 토해냈다. 그리고 재빨리 류거흘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류거흘은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은 모양을 했다. 둘은 시선을 교환하고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류거흘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제 와서 왕을 보호하려 드는 것이냐? 너의 어미를 나의 아내를 잊지 않았다면, 그녀를 잊지 않았다면 돈과 지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돌아설 수 있지?”

  가율은 단검을 집어 흐트러진 머리를 일부 잘라내었다. 벽에 박힌 태도에 손을 살짝 얹고 입을 열었다.

  “시간과…… 이해입니다.”

  가율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류거흘은 몸을 날렸다. 주먹이 바로 가율의 턱을 때렸고 가율은 볼품없이 땅바닥에 허물어진다. 그리고 류거흘은 태도를 힘껏 뽑아 들었다. 그는 시간과 이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복도 전체가 두 단어로 넘쳐났을 때 그는 태도를 휘둘렀다.
  햔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장의 지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 계단에서 한 발짝 더 디디자 피 웅덩이가 밟혔다. 찰방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려린과 인율은 지상에서 지진의 부대를 만날 수 있었다. 부상을 입은 인율은 인열에게 맡겼고 려린은 지진의 호위를 받아 지하로 향했다. 지진의 경직된 발걸음 소리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고요함에 묻혀갔다.

  “내 아들이 맞느냐?”

  햔은 피의 웅덩이에 서서, 려린과 지진은 마지막 계단을 앞두고 류거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도 없이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작아지지도 않고 지상까지 나아갔다. 목소리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하늘에 껴있던 먹구름은 한 방울씩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회의장을 자욱이 메운 먼지가 걷혀 간다. 그곳에 드러난 사람들의 모습은 사지가 멀쩡하지 않거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자세한 생김새나 체형 따위는 피에 묻혀, 단지 상처 입은 사람들만이 보였다. 비는 그들의 볼을 타고 흐른다.

  “맞습니다.”

  가율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으며 대답했다. 류거흘은 넘어진 가율 위에 서있었다. 한 손은 태도를 쥐고 있었는데, 태도는 복도의 천장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약간의 부스러기가 류거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류거흘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입을 연다.

  “네 녀석이 보낸 시간과 이해심이 옳았다고 한다. 그러면 깊은 복수심에 불타 여태 달려온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되느냐, 열심히 사는 것이 복수라는 동화 같은 말로 구슬릴 것이냐? 뜨거운 햇빛 아래서 열심히 일해 권족들의 배를 불려주면 그것이 복수냐. 복수하지 않는 참다운 삶이나 외치며 신에게나 빌도록 할까! 복수가 복수를 낳지 않아도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무리들은 누군가를 죽여 나간다. 결국 한낱 개소리 일뿐 아니냐!”

  작은 마찰음과 함께 천장에 금이 간다. 류거흘은 힘껏 태도를 휘둘렀다. 가율의 어깨 위로 태도가 스쳐지나간다. 파열음이 나고 가율은 자신의 얼굴이 비춰지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태도는 가율의 어깨에 생채기 하나 내지 않았다. 가율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한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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