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셋. 푸른물결의 장 (2)



  “햔이다. 햔의 공격이야!”

  지늘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눈을 크게 뜨고 천막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천막에 가려 바깥은 그저 하얀색의 세상일 뿐이다. 지늘윤을 재빨리 등지고 호위군 하나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호랑이 가죽을 치웠다. 호랑이 가죽 밑에는 검, 도끼, 창, 활 등의 무기가 묻혀 있었다.

  “지늘윤님, 최대한 엎드려 계십시오.”

  지늘윤은 호랑이 가죽처럼 몸을 엎드린다. 호위군들은 책상을 옮겨서 방패처럼 만든다. 활을 든 호위군이 팽팽하게 잡아당긴 시위를 부르르 떨고, 창과 검을 든 호위군들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나 적막만이 이들을 상대하고 있다. 식은땀이 모든 이의 등골을 적셨고 지늘윤은 숨을 몰아쉰다.
  잠시 후 천막의 입구가 들춰졌다. 순간 활을 든 호위군이 반사적으로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쐑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것을 맞춘다. 화살에 맞은 것은 가죽 방패였다. 어른의 발끝부터 목까지는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길이이다. 방패의 뒤에서 햔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난 권족 회의가 끝나고 저에게 해주신 배웅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 화살이 어디에 꽂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이 지늘윤님의 심장이 아니라면 좋겠군요.”

  지늘윤은 몰아쉬던 숨을 멈추고 신음 소리를 뱉는다.

  “잠시 대화를 가졌으면 합니다.”

  하얀 천막 사이에 검은 방패 뒤, 햔은 억양이 절제된 목소리로 애기했다.
  지늘윤은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호위군들에게 무장을 해제할 것을 명한다. 햔도 자신의 호위군에게 그렇게 하도록 했다. 검은 방패가 땅을 나뒹굴고 그 자리에는 햔, 인열, 지진이 서있다. 방금 전까지 화살막이로 사용된 책상은 둘이 마주하고 앉아 회의의 용도로 이용된다. 각자의 호위군들은 주먹을 꼭 쥐고 이를 갈며 대치하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지늘윤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의 중심을 찌르면서 말한다.

  “어째서 이곳에 있지?”

  햔은 고개를 젓는다. 권족 회의장이 아닌 곳에서 굳이 대권족의 물음에 먼저 답할 의무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서 책상 위에 올린다. 지진이 품에서 웬 종이를 꺼내 그 손바닥에 얹었다.
  그 종이에는 금가루가 묻은 육망성 표시가 찍혀 있었다. 지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햔을 바라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가져갔다. 서로 눈빛만을 교환하다가 이번에는 햔이 서두를 꺼낸다. 지난 권족 회의에 대한 이야기였고, 끝난 뒤에 습격을 받았단 얘기를 한다. 지늘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들었지만 눈동자는 미약하게 흔들린다. 여전히 신자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슬쩍 보고 흔들림은 더욱 심해졌다.
  햔이 말하던 도중에 틈을 보이자마자 지늘윤은 입을 연다.

  “무모하다. 고작 세 명의 인원으로 나를 인질로 잡을 생각을 했다고? 지금만 해도 천막 주변에는 열은 되는 호위군이 있었다. 자린산을 수색하는 군으로 치면 백은 돼.”

  햔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지늘윤은 기운을 얻은 것처럼 더욱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사실은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주변 호위군들 중에 이미 매수된 자들이 있거나, 아니면 내 휘하의 권족들 중에 네 편이 있는 건가?”

  얘기를 하면서 지늘윤은 자신의 옆에 선 호위군을 흘깃흘깃 봤다. 호위군들은 불쾌한 듯이 입을 놀리지만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그들은 무시하고 지늘윤의 말은 계속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인육애호가와 손을 잡은 거겠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호위군을 난자하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이게 가장 이치에 맞지!”
  “류거흘 말이오?”

  조용히 있던 햔이 불쑥 대답했다. 햔의 입가에는 얇은 미소가 걸려 있다.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초점으로 지늘윤의 입을 주시했다. 지늘윤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뭐라 말도 못하고 햔의 시선을 받아낸다. 햔은 짓고 있던 미소에 힘을 주어 입술을 떼었다.

  “인육애호가를 총 통솔하고 있는 대장의 이름입니다.”

  햔과 지늘윤의 대화는 달이 한 뼘은 더 기울 때까지 계속 된다. 그동안 천막 밖에는 바람만이 불었다. 바람에는 피비린내가 섞여 있다. 어둠 속 새까만 나무들은 붉은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고 이따금 나뭇잎을 떨쳐낸다. 밤에 박힌 달과 별들은 푸르게 빛나고 있다.
  류거흘은 권족 회의장을 향하면서 몇 차례 더 호위군들과 대면했다. 그럴 때마다 거침없이 태도를 휘둘렀다. 그는 오늘 스무 번째 호위군 시체에 앉아 구시렁거린다.

  “내가 나를 만들 뿐이라?”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썹을 들썩였다. 태도를 쥔 손이 경련을 일으키자 다른 손으로 덧잡아서 그것을 막는다. 태도는 놓고 깔고 앉은 시체의 가죽갑옷을 뒤적였다. 부시럭거리는 소리 끝에 말린 고기가 몇 점 발견된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입에 쑤셔 넣어 씹기 시작했다. 목이 매여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키기까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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