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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67
나라
셋. 푸른 물결의 장 (4)
검은 짐승의 무리, 그들은 숲에 넓게 퍼져 무기를 빛내고 있었다. 류거흘과 사내가 도착하자 제각기 준비한 무기를 꺼내든다. 작은 모닥불의 빛이 무기를 비춰 이빨처럼 빛나게 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류거흘은 그곳을 주시했다. 다섯 명의 호위군이 무기 앞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다. 얼굴에 잔 상처가 많이 나있었고 둘은 사지 중 하나가 잘린 채였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피가 늪을 이뤘다.
류거흘이 다가서자 들이대고 있던 무기를 치웠다. 호위군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했지만 금세 류거흘의 태도가 목을 위협한다. 류거흘은 지긋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본다. 바람이 불고 근처에 있던 모닥불이 거세게 피어올랐다. 류거흘과 그들의 그림자는 길고 깊어졌다.
“왕은 저기에 있나?”
류거흘은 권족 회의장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호위군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럼 가율은 있나?”
팔이 하나 없던 호위군이 움찔했다. 류거흘이 미소를 띠우고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모닥불은 바람을 받아 확실히 커져 있었다. 날려 들어온 낙엽도 멋모르고 달려든 곤충도 남김없이 태우며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류거흘을 포함해 그곳에 모인 무리는 숲의 그림자와 불의 빛으로 검붉은 빛을 띠었다.
“호위군의 무리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답니다. 갑옷과 검, 활까지 완전 무장입니다.”
불을 쬐던 류거흘에게 사내가 말했다. 류거흘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손을 등 뒤로 넘겨서 태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우린 앞으로 간다.”
아랫입술만 꼭 깨물던 호위군이 입을 열었다. 검 끝이 목전에 와서 위협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호위군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끝맺는다. 검은 달이 있는 곳까지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목전에서 멈추지 않았다. 달에 닿을 것처럼, 피의 분수는 뿜어져 올랐다. 남은 네 명의 호위군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의 걸음은 후열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에 의해 멈춰졌다. 모두들 뒤를 돌아본 가운데, 한 명이 등에 화살이 박힌 채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거대한 기둥처럼 자리 잡은 화살 너머로 호위군들의 궁군 대열이 보인다. 모두들 활에 화살을 먹인 채로 두 번째 공격을 하려고 했다. 류거흘은 슬쩍 그 모습만 보고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걸음을 뗐다.
류거흘은 태도를 크게 휘둘러 나무 가지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이제 그의 시선에는 오로지 권족 회의장의 담벼락만 들어왔다.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숲을 울리고 화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 머리, 등 그리고 땅과 나무, 위치의 구분 없이 화살은 은빛 촉을 박아 넣는다. 흙이 튀기도 하며 수액이 나오기도 하고 피가 흐르기도 한다. 화살을 맞고도 목숨을 잃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무기와 몸뚱이로 호위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류거흘은 잦아드는 화살의 빗속을 유유히 걸어 나간다. 비명의 강이 멈추지 않고 숲을 흘러 오른다.
“인육애호가다! 인육애호가들이다! 막아라!”
회의장의 문 앞에 서있던 호위군이 소리쳤다. 대번에 문을 열고 호위군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문고리 닫히는 소리가 쿵하고 울렸다. 류거흘이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자, 여러 명의 인육애호가들이 나무통을 들고 앞장섰다. 그들이 그대로 달려들었고 문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호위군들이 버팀목처럼 문을 막아보지만 소용없었다. 곧 문은 박살이 나고 몇몇의 호위군들도 덩달아 나무통에 밀려 넘어졌다. 문이 사라진 곳으로 던질 수 있는 모든 무기가 날아들어 포진한 호위군들을 쓰러뜨린다. 호위군들도 준비해놓은 활로 대적하지만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한 나무통이 진형을 무너뜨려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숲과 회의장의 사이에 피와 시신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에는 듬성듬성 풀처럼 보이는 화살들이 꽂혀 있었다. 호수를 넘어 햔이 회의장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비명과 괴성, 함성이 어울려 회의장은 엉망이었다. 햔이 팔을 들어 회의장을 가리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발치로 창이 날아든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회의장의 입구에 류거흘이 서있었다. 류거흘은 태도를 휘둘러 입구 앞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입술을 뗐다.
“햔, 당신은 다른 방법으로 싸울 수 있다. 이건 우리 방식이야. 오늘밤 이곳은 우리 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당신도 다를 것이 없어. 당신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다른 방법을 택해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결처럼 정적은 피의 호수 위를 덮었다. 햔은 파문을 일으킨다.
“이 산의 밑에서 우연치 않게 당신과 만났지요. 나와 당신은 모두 부상을 당한 상태로 대화를 할 기회를 가졌고, 당신이 내 아내를 살려줬단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당신 아내에 대한 얘기까지도. 제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당신은 당신만 만들 뿐입니다. 당신의 아내를 죽여 당신을 만들어낸 어떤 군처럼, 당신은 누군가를 죽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수할 여지를 남기겠죠. 그래요. 철왕은 잘못됐습니다. 비진 국가의 왕도 잘못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잘한 것 없습니다.”
류거흘은 등을 돌렸다. 걸음을 걷지는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햔이 말을 끝맺는다.
“전쟁은, 그런 겁니다. 그러니 당신도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햔의 목소리가 숲을 작게 울렸다. 고요하던 숲에 바람이 불고 낙엽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휘날린다. 곤히 잠들었던 야생동물들은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에 깨어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호위군들은 발 앞면에 잔뜩 체중을 실었다. 전열에 활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부러질 것만 같았다.
“헛소리 하지 마. 옳은 말만 갖고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류거흘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걸음을 뗀다. 그는 햔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회의장 안에서 일어나는 먼지로, 입구 너머의 상황은 밖에서 더 이상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달빛을 받은 먼지의 색이 묘하게 붉었다. 그는 하늘 높이 손을 뻗어 손바닥을 활짝 폈다. 그리고 주먹을 굳게 쥐었다. 전열의 활들이 힘을 잃고 땅바닥을 향한다.
여기저기서 피가 솟구치고 먼지는 피를 머금어 떠다녔다. 류거흘은 먼지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호위군에게 태도를 겨냥했다. 그는 먼저 등을 돌려 호위군이 찔러 들어오는 검을 태도로 막는다. 그대로 자세를 낮춰 태도를 뽑자 호위군의 검은 위로 튕겨져 나갔다. 마지막으로 한쪽 발을 반 보 빼고 태도를 둥글게 휘둘렀다. 무너지듯 한 비명은 먼지에 묻혔다. 태도의 몸이 지나간 곳으로 회의장 건물이 보인다. 류거흘은 쏟아져 내리는 먼지를 맞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지늘윤은 서늘해진 밤공기를 맞아 조금 떨고 있었다. 함께 묶여 있는 호위군들도 마찬가지다. 셋이 어깨를 들썩거려가며 팔과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려고 했다. 곧 움직임을 저지하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멈춰요. 안 그러면 시위를 놓을지도 모르니까.”
그림자 속에서 예리한 화살촉부터 달빛 아래로 나타난다. 생채기가 몇 개 난 손, 찢어진 옷이 걸쳐진 어깨, 입술 끝에서 흐르는 피. 지늘윤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햔의 아내……?”
려린은 화살촉을 지늘윤의 정수리에 겨누고 발을 멈췄다. 그녀의 등 뒤로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있는 인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지늘윤을 노려보고 있다. 서슬 퍼런 눈빛과 지늘윤이 대면하는 사이, 려린이 날카로운 한 마디로 끼어든다.
“당신이 우리 마을을 불태우도록 시켰어요?”
지늘윤은 입술의 떨림을 멈췄다. 대권족의 지위를 이용해 군을 인육애호가처럼 변장시켜 운용, 자신과는 정치색이 다른 권족 관할의 마을 방화, 권족에 대한 살인 미수까지 려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지늘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말이 모두 끝나자 지늘윤은 고개를 들어 려린을 올려다본다. 려린은 볼 위를 흘러내리는 눈물로 시야가 흐린 상태였다. 그녀는 꽉 매인 목소리로 말했다.
“권력이란 것, 꼭 쌓아놓은 목숨 위에 세울 수 있는 건가요?”
셋. 푸른 물결의 장 (4)
검은 짐승의 무리, 그들은 숲에 넓게 퍼져 무기를 빛내고 있었다. 류거흘과 사내가 도착하자 제각기 준비한 무기를 꺼내든다. 작은 모닥불의 빛이 무기를 비춰 이빨처럼 빛나게 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류거흘은 그곳을 주시했다. 다섯 명의 호위군이 무기 앞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다. 얼굴에 잔 상처가 많이 나있었고 둘은 사지 중 하나가 잘린 채였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피가 늪을 이뤘다.
류거흘이 다가서자 들이대고 있던 무기를 치웠다. 호위군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했지만 금세 류거흘의 태도가 목을 위협한다. 류거흘은 지긋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본다. 바람이 불고 근처에 있던 모닥불이 거세게 피어올랐다. 류거흘과 그들의 그림자는 길고 깊어졌다.
“왕은 저기에 있나?”
류거흘은 권족 회의장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호위군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럼 가율은 있나?”
팔이 하나 없던 호위군이 움찔했다. 류거흘이 미소를 띠우고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모닥불은 바람을 받아 확실히 커져 있었다. 날려 들어온 낙엽도 멋모르고 달려든 곤충도 남김없이 태우며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류거흘을 포함해 그곳에 모인 무리는 숲의 그림자와 불의 빛으로 검붉은 빛을 띠었다.
“호위군의 무리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답니다. 갑옷과 검, 활까지 완전 무장입니다.”
불을 쬐던 류거흘에게 사내가 말했다. 류거흘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손을 등 뒤로 넘겨서 태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우린 앞으로 간다.”
아랫입술만 꼭 깨물던 호위군이 입을 열었다. 검 끝이 목전에 와서 위협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호위군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끝맺는다. 검은 달이 있는 곳까지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목전에서 멈추지 않았다. 달에 닿을 것처럼, 피의 분수는 뿜어져 올랐다. 남은 네 명의 호위군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의 걸음은 후열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에 의해 멈춰졌다. 모두들 뒤를 돌아본 가운데, 한 명이 등에 화살이 박힌 채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거대한 기둥처럼 자리 잡은 화살 너머로 호위군들의 궁군 대열이 보인다. 모두들 활에 화살을 먹인 채로 두 번째 공격을 하려고 했다. 류거흘은 슬쩍 그 모습만 보고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걸음을 뗐다.
류거흘은 태도를 크게 휘둘러 나무 가지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이제 그의 시선에는 오로지 권족 회의장의 담벼락만 들어왔다.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숲을 울리고 화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 머리, 등 그리고 땅과 나무, 위치의 구분 없이 화살은 은빛 촉을 박아 넣는다. 흙이 튀기도 하며 수액이 나오기도 하고 피가 흐르기도 한다. 화살을 맞고도 목숨을 잃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무기와 몸뚱이로 호위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류거흘은 잦아드는 화살의 빗속을 유유히 걸어 나간다. 비명의 강이 멈추지 않고 숲을 흘러 오른다.
“인육애호가다! 인육애호가들이다! 막아라!”
회의장의 문 앞에 서있던 호위군이 소리쳤다. 대번에 문을 열고 호위군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문고리 닫히는 소리가 쿵하고 울렸다. 류거흘이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자, 여러 명의 인육애호가들이 나무통을 들고 앞장섰다. 그들이 그대로 달려들었고 문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호위군들이 버팀목처럼 문을 막아보지만 소용없었다. 곧 문은 박살이 나고 몇몇의 호위군들도 덩달아 나무통에 밀려 넘어졌다. 문이 사라진 곳으로 던질 수 있는 모든 무기가 날아들어 포진한 호위군들을 쓰러뜨린다. 호위군들도 준비해놓은 활로 대적하지만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한 나무통이 진형을 무너뜨려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숲과 회의장의 사이에 피와 시신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에는 듬성듬성 풀처럼 보이는 화살들이 꽂혀 있었다. 호수를 넘어 햔이 회의장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비명과 괴성, 함성이 어울려 회의장은 엉망이었다. 햔이 팔을 들어 회의장을 가리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발치로 창이 날아든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회의장의 입구에 류거흘이 서있었다. 류거흘은 태도를 휘둘러 입구 앞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입술을 뗐다.
“햔, 당신은 다른 방법으로 싸울 수 있다. 이건 우리 방식이야. 오늘밤 이곳은 우리 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당신도 다를 것이 없어. 당신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다른 방법을 택해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결처럼 정적은 피의 호수 위를 덮었다. 햔은 파문을 일으킨다.
“이 산의 밑에서 우연치 않게 당신과 만났지요. 나와 당신은 모두 부상을 당한 상태로 대화를 할 기회를 가졌고, 당신이 내 아내를 살려줬단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당신 아내에 대한 얘기까지도. 제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당신은 당신만 만들 뿐입니다. 당신의 아내를 죽여 당신을 만들어낸 어떤 군처럼, 당신은 누군가를 죽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수할 여지를 남기겠죠. 그래요. 철왕은 잘못됐습니다. 비진 국가의 왕도 잘못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잘한 것 없습니다.”
류거흘은 등을 돌렸다. 걸음을 걷지는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햔이 말을 끝맺는다.
“전쟁은, 그런 겁니다. 그러니 당신도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햔의 목소리가 숲을 작게 울렸다. 고요하던 숲에 바람이 불고 낙엽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휘날린다. 곤히 잠들었던 야생동물들은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에 깨어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호위군들은 발 앞면에 잔뜩 체중을 실었다. 전열에 활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부러질 것만 같았다.
“헛소리 하지 마. 옳은 말만 갖고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류거흘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걸음을 뗀다. 그는 햔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회의장 안에서 일어나는 먼지로, 입구 너머의 상황은 밖에서 더 이상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달빛을 받은 먼지의 색이 묘하게 붉었다. 그는 하늘 높이 손을 뻗어 손바닥을 활짝 폈다. 그리고 주먹을 굳게 쥐었다. 전열의 활들이 힘을 잃고 땅바닥을 향한다.
여기저기서 피가 솟구치고 먼지는 피를 머금어 떠다녔다. 류거흘은 먼지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호위군에게 태도를 겨냥했다. 그는 먼저 등을 돌려 호위군이 찔러 들어오는 검을 태도로 막는다. 그대로 자세를 낮춰 태도를 뽑자 호위군의 검은 위로 튕겨져 나갔다. 마지막으로 한쪽 발을 반 보 빼고 태도를 둥글게 휘둘렀다. 무너지듯 한 비명은 먼지에 묻혔다. 태도의 몸이 지나간 곳으로 회의장 건물이 보인다. 류거흘은 쏟아져 내리는 먼지를 맞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지늘윤은 서늘해진 밤공기를 맞아 조금 떨고 있었다. 함께 묶여 있는 호위군들도 마찬가지다. 셋이 어깨를 들썩거려가며 팔과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려고 했다. 곧 움직임을 저지하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멈춰요. 안 그러면 시위를 놓을지도 모르니까.”
그림자 속에서 예리한 화살촉부터 달빛 아래로 나타난다. 생채기가 몇 개 난 손, 찢어진 옷이 걸쳐진 어깨, 입술 끝에서 흐르는 피. 지늘윤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햔의 아내……?”
려린은 화살촉을 지늘윤의 정수리에 겨누고 발을 멈췄다. 그녀의 등 뒤로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있는 인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지늘윤을 노려보고 있다. 서슬 퍼런 눈빛과 지늘윤이 대면하는 사이, 려린이 날카로운 한 마디로 끼어든다.
“당신이 우리 마을을 불태우도록 시켰어요?”
지늘윤은 입술의 떨림을 멈췄다. 대권족의 지위를 이용해 군을 인육애호가처럼 변장시켜 운용, 자신과는 정치색이 다른 권족 관할의 마을 방화, 권족에 대한 살인 미수까지 려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지늘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말이 모두 끝나자 지늘윤은 고개를 들어 려린을 올려다본다. 려린은 볼 위를 흘러내리는 눈물로 시야가 흐린 상태였다. 그녀는 꽉 매인 목소리로 말했다.
“권력이란 것, 꼭 쌓아놓은 목숨 위에 세울 수 있는 건가요?”

도톨묵